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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톰보이, 나는 누구인가 생각해 보는 영화

 

톰보이

우리 모두에겐 어린 시절이라는 찰나의 순간이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반복되는 성장을 통해 지금의 자신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지금의 모습에 얼마나 만족을 하는지는 각기 다르겠지만 이러한 과정이 있었던 건 공통된 사실입니다. 모두에게 존재했던 일,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성장영화는 다른 어떠한 장르보다 관객들에게 가깝고 사랑받기 좋은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어린 시절과 성장의 과정은 조금 독특합니다. 우리들 모두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들 중 누군가의 이야기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생각해보게 되는 영화입니다. 예술영화의 산지인 프랑스에서 넘어온 이 작품은 분명 북미 영화와 한국 영화와는 다른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셀린 시아마 감독의 2011년도 작품, <톰보이>입니다.

좋은 설정, 좋은 연출

영화는 성별을 알 수 없는 한 꼬마의 뒷모습에서 시작됩니다. 선루프에 몸을 내밀어 바람을 쐬는 한 아이, 주인공 로레입니다. 이제 막 가족과 함께 새로운 동네로 이사 온 10살의 꼬마는 하나의 공간이나 한순간의 찰나에도 성장과 변화를 할 수 있는 시기기에 감정의 계절인 여름과 공간의 변화인 이사라는 설정은 앞으로의 전개를 암시하는 은유와도 같습니다. 주인공 로레는 베란다를 통해 소년들의 모습을 지켜봅니다. 그 와중에 소년이 아닌 소녀 리사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영화의 가장 중요한 질문을 리사가 합니다. "넌 누구니?" 사실 리사의 이 단순한 질문은 주인공 꼬마에겐 이름이 아닌 정체성에 대한 물음입니다. 그리고 "미카엘"이라 대답함으로 이 영화는 시작됩니다. 영화는 갈등의 연속입니다. 그리고 해결의 과정입니다. 가장 순수하지만, 가장 소유에 대한 탐욕이 강한 시절, 주인공이 가지고 싶어 하는 건 결코 선천적으론 가질 수 없는 남성성입니다. 자신이 남성이라고 생각하는 것 아니면 남성이 되고 싶은 것 그것이 무엇이든 영화적 갈등으론 최고의 설정입니다. 관객들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순수함을 느끼고 때론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감독은 이러한 점을 섬세하면서도 첨예하게 나열합니다. 핑크빛과 인형들로 가득한 동생 잔의 방과 달리 주인공의 방은 푸른빛의 담담한 느낌의 방입니다. 발레복을 입고 뛰어다니는 동생, 욕조에서 록스타의 머리를 하고 좋아하는 주인공, 키 목걸이에 분홍색 끈을 빼고 푸른색 끈으로 교체하는 모습, 인물의 입이 아닌 시각으로 보이는 이 표현들은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합니다. 직접적이지 않으니 오히려 여백이 있고 그 여백을 관객들은 스스로 사고해 채워 넣으려 합니다. 이것의 과정을 우리는 흔히 여운이라고 합니다. 영화에서 제시한 설정들은 답을 내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독의 핵심적인 연출도 답을 내리지 않는 것입니다. 담백하면서도 쌉싸름한 영화, 현대의 상업영화에선 쉽게 볼 수 없는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영화가 아닌 사실, 사실을 통한 순수성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정말 사실 같다는 점입니다. 많은 영화들이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정보를 나열합니다. 그러다 보면 현실 같지 않은 상황, 현실 같지 않은 대사를 하기도 합니다. 그게 극단적으로 가면 흔히 드라마에서 전화를 받는 장면이 되어버립니다. "뭐? 옆집 딸내미가 이혼했다고?"와 같은 대사, 하지만 이 영화는 정말 사실 같습니다. 어린 시절의 사진첩을 넘겨보는 기분입니다. 오줌을 먹어봤냐니 코딱지를 먹어봤냐니 말도 안 되는 말들로 웃음꽃이 피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을 처음 맞이한 순간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이 깨졌을 때의 방황도 있습니다. 그 시절의 아름다움을 과장하지 않습니다. 그때의 갈등도 과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화는 진중하지만 지치거나 너무 무겁지 않습니다. 사실은 이 영화가 제기하는 문제는 굉장히 어려운 성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성인인 우리들도 다 다른 의견을 가졌지만 쉽사리 이야기하진 못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아이의 시선이라는 명백한 기준을 통해 문제를 풀어갑니다. 수영장에 가게 되자 아랫도리에 고무찰흙을 넣는다든지 부모님께 걸리지 않을 정도로 머리를 자른다든지 정말 많은 요소가 나옵니다. 성에 대한 규범이나 관념이 정착되지 않은 아이들의 순수함입니다. 그리고 그 대표성을 가진 인물은 바로 잔입니다. 주인공 로레의 가장 큰 조력자입니다. 로레의 머리를 록스타의 모히칸 스타일로 만들고 그 모습을 예쁘다고 말해줍니다. 만약 성인인 우리들이 이 머리를 봤다면 멋있다고 할 겁니다. 부모님과의 식사 자리에서도 잔은 미카엘과 즐겁게 놀았다며 아무렇지 않게 말을 합니다. 성의 역할에 대해 아직 자리 잡지 않은 잔의 눈엔 그의 언니가 여자를 좋아하든 그의 언니가 자신이 남성이라 생각하든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겁니다. 단지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그저 성인들의 시선입니다.

어쩌면 상업영화

정적이고 느린 영화라는 예상과 달리 이 영화는 재미를 느낄 충분한 리듬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독님이 스파이물과 언더커버 장르를 언급하셨는데 이야기의 구조가 정말 스파이물 같습니다. 스파이물의 핵심은 자신의 정체가 들킬까 말까의 문제입니다. 이 영화 또한 같습니다. 남성인 척하는 자신의 모습이 들킬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만연하게 가지고 있는 프랑스 영화라는 인식과 달리 순수하게 상업적 재미도 있는 영화입니다. 축구를 마친 로레는 숲 속에 앉아서 소변을 보다 친구에게 걸립니다. 또 반 배정이 끝난 상태에 리사는 미카엘의 이름이 없다며 물어봅니다. 그리고 결국엔 남성인 척 한 자신의 모습을 엄마에게 걸리게 됩니다. 주인공을 막아서는 갈등은 확실히 존재하고 그 갈등은 커져가며 확장성을 가집니다. 뻔히 죽지 않을 걸 아는 주인공에게 수백 발의 총알이 날아오는 것보다. 숨겨왔던 자신의 성 정체성이 걸리게 될 위기는 훨씬 더 치명적이고 큰 서스펜스를 제공합니다. 그 이후의 엄마의 훈계는 고어 영화와 슬래셔 무비보다도 잔인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리사에게 여성임을 확인받는 장면은 멜로 영화만큼 슬픕니다. <톰보이>는 상업과 예술을 떠나 순순히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여백과 적은 대사로 생각할 시간을 주는 영화

여백이 많은 영화입니다. 그만큼 해석할 거리도 많은 영화입니다. 잔에게 읽어주는 책이 <정글북>이라는 점, 카드게임 내용이 딸과 아들에 관한 것이라는 점, 그리고 아빠가 로레에게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도 모두 로레와 관련된 상징과 은유입니다. 많은 은유와 상징을 품고 그것을 찾는 보물 찾기와도 같은 영화입니다. 또 대사가 정말 좋습니다. 이 영화는 정말 적은 대사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무리하게 명언을 만든다거나 명장면을 그리려 하지 않습니다. 정말 그 캐릭터가 할만한 대사를 합니다. 저는 그중에서 이 대사가 정말 깊게 와닿았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엄마에게 걸리게 되자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묻는 엄마에게 로레는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합니다. 이 대사를 들을 때 정말 먹먹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잘잘못을 따질 수 없는 모르는 일인 게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여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떠났던 리사는 돌아오고 마지막 질문은 처음과 같습니다. "넌 누구니?" 그리고 마지막 대사는 처음과는 다르죠 "난 로레야". 영화는 이렇게 끝이 나지만 이들의 삶은 다시 시작될 것입니다. 그들의 삶이 소수의 삶이든 다수의 삶이든 이 영화를 본 모두는 그들의 삶을 응원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