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로너츠>는 리처드 홈스의 소설 <하늘로의 추락>을 각색한 영화입니다. 그리고 그 <하늘로의 추락>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입니다. 영화화하는 도중에 몇몇 실존 인물이 누락되고 생성된 캐릭터의 성별에 대해 여러 가지 말이 있지만 전체적인 그림은 나쁘지 않게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더 높은 하늘에 대한 인간의 욕심과 도전, 그 중심에 놓인 아멜리아와 제임스라는 두 비주류 캐릭터, 이 영화의 전부이자 가장 큰 재미 요소입니다. 열기구라는 소재는 특별합니다. 그리고 펠리시티 존스, 에디 레드메인의 마스크는 아직까지 신선합니다. 이와 같이 좋은 재료를 가지고 있는 <에어로너츠>는 과연 어땠을까요? 톰 하퍼 감독의 <에어로너츠>입니다.
같지만 다른 비주류의 만남
19세기의 런던, 많은 관객들이 북적이는 광장 속 제임스는 열기구를 정비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최고 고도 비행기록을 프랑스가 경신했고 그는 그 기록을 깨야 하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제임스의 마음속엔 다른 목표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기상 변화의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영화의 시작부터 제임스의 캐릭터는 명확합니다. 친구인 존은 기상 악화를 우려하지만 제임스는 기상 악화를 우려할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제임스는 숫자와 논리를 철저히 믿는 과학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비행은 혼자서 할 순 없습니다. 열기구 전문 조종사가 필요하기 때문에 한 명의 주인공이 더 등장합니다. 그 등장은 제임스와 달리 화려합니다. 달리는 마차 위를 올라선 여성, 연속 옆 구르기를 하는 쇼맨십, 그리고 많은 관객들 앞에서도 여유와 위트를 잃지 않는 전형적인 엔터테이너, 바로 아멜리아입니다. 창공을 배경으로 한 영화답게 초반 전개는 시원시원합니다. 많은 설명을 배제하고 바로 열기구에 태워버립니다. 그리고 그 두 주인공은 사회의 비주류라는 입장은 같지만 너무나도 다른 인물이기에 이들의 갈등은 예정되어 있고 이들의 갈등의 봉합과 성장은 영화의 주된 뼈대가 될 것입니다.
지극히 캐릭터 위주의 플롯
이 영화의 표면적 이야기는 단순합니다. 열기구를 타고 더 높은 하늘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단순한 만큼 이야기의 밀도는 높습니다. 반면 이야기의 볼륨감은 부족합니다. 창공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인물들의 주된 공간은 열기구라는 한정된 공간입니다. 외적인 상황과 인물이 개입할 수 없는 이 설정은 이야기를 키우는 것엔 치명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발생하는 위기도 사실 예상하는 범주에 놓여있고 그 상황도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밀실을 설정으로 한 영화와도 유사합니다. 이러한 플롯이 이야기를 확장시키는 방법은 많지는 않습니다. 그중 가장 좋은 방법은 이야기의 흐름을 사건 위주가 아니라 캐릭터 위주로 흘러가게 하는 것입니다. <에어로너츠>가 그렇습니다. 영화의 많은 비중을 두 인물의 내적 결핍과 성장의 과정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제임스는 기상을 예측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학계에선 그저 몽상가 취급을 당하고 있고 사교 파티에서의 그의 옷차림과 행동은 그가 얼마나 이런 모임에서 비주류인지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멜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비행에서 남편은 사고를 당해 사망했고 그녀는 2년이란 세월을 폐인으로 지냅니다. 그러한 모습을 지켜보는 가족은 그녀가 사교 모임을 즐기고 평범한 남편을 만나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엔 죽은 남편에 대한 죄책감과 자신이 원하는 삶에 대한 욕망이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영화의 많은 시간은 이들의 상처를 조명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그들의 상처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공감하게 됩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으론 조금 과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외적인 사건을 최대한으로 전개하고 내적인 이야기가 들어간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외적인 사건이 부족하다 보니 프랑스의 기록을 깼을 때 새로운 과학적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영화가 끝났을 때도 여운은 남지만 풍성하다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점은 어드벤처물을 기대한 관객들에겐 처지는 중반부를 전달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분들이 원하는 어드벤처의 재미가 후반부에 몰려있습니다. 많은 플래시백이 중반부를 차지하고 이러한 플래시백의 반복은 영화의 흐름을 끊거나 지루함으로 연결될 수도 있었습니다. '조금만 힘을 뺐다면 어땠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장의 마무리
높은 하늘로 올라가겠다는 주인공들의 목표는 빠르게 성공합니다. 폭풍을 만나는 한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아멜리아의 경험을 토대로 극복합니다. 프랑스의 기록을 깬 그들은 가장 큰 적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자신이 욕망입니다. 숫자와 과학적 근거만을 믿는 제임스는 예상치 못한 폭풍을 만나며 경험과 감각을 지닌 아멜리아를 인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지식에 대한 욕망은 멈추지 않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던지더라도 도달하고 싶은 목적, 아멜리아는 그런 제임스를 보며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여기서 아멜리아의 가장 큰 내면적 결핍이 등장합니다. 남편의 죽음은 바로 자신을 살리기 위한 자기희생이었다는 점입니다. 열기구는 더욱더 높아지고 부족한 산소와 떨어지는 온도로 제임스는 정신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아멜리아는 제임스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자기희생을 발휘합니다. 열기구라는 신선한 소재의 힘이 드러나는 지점입니다. 그간 쉽게 접하지 못한 새로운 서스펜스들이 관객들을 즐겁게 합니다. 거대한 열기구를 올라가는 아멜리아
불어오는 바람과 얼어버린 풍선, 거대한 스크린으로 만나는 이 시퀀스는 단연 압권입니다. 될 듯 안 될 듯 단계적으로 오는 위기가 영화의 충분한 리듬감을 부여합니다. 빠르게 추락하는 열기구, 무게를 줄이려 이것저것 버리고 사람이 타는 바스켓마저 절단하지만 낙하 속도를 줄일 순 없었습니다. 그리고 최후의 수단으로 아멜리아는 자신이 투신해 조금의 무게라도 줄이려 합니다. 하지만 제임스 또한 주인공입니다. 결정적인 역할을 부여받은 캐릭터이기에 제임스는 자신의 과학적 지식을 이용합니다. 그건 바로 애드벌룬에 달린 커튼을 끊어 낙하산처럼 만들자는 것입니다. 초반부에 열기구에서 강아지를 밖으로 던지고 그 강아지가 낙하산을 타고 떨어지는 장면이 있었고 바로 마지막을 위한 복선입니다. 결국 그 둘은 거대한 낙하산을 타고 거칠게 지상으로 도착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닥을 기는 제임스와 아멜리아는 대화를 나눕니다. "일어설 수 있어요?", "안 그러는 게 낫겠어요", "내가 도와주면요?", "그럼 일어날게요", 별을 따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도와줄 조력자가 필요하다는 존의 말처럼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고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열기구라는 소재의 특별성
사실은 열기구라는 소재의 특별성을 빼면 조금은 뻔하고 정직한 전개입니다. 하지만 항상 먹혀왔던 이야기고 소재의 특별성이 제법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열기구의 시각적 쾌감이 상당합니다. 하늘에서 보이는 런던의 광경, 광활한 창공의 모습과 아름다운 눈의 이미지
그리고 이러한 자연이 주는 거대한 위기감과 이에 대한 인간의 도전은 묘한 성취감을 관객에게 전달합니다. 두 배우의 연기 또한 좋았습니다. 이미 <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서 한번 호흡을 맞췄었고 심지어 그 영화에서도 에디 레드메인은 과학자였습니다. 영화의 대부분을 두 배우가 채웠지만 삭막함은 없었습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미묘하게 변화하는 캐릭터의 단계성을 잘 살렸다고 생각됩니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건즈 아킴보, 불량식품 같은 B급 영화 (0) | 2022.07.15 |
---|---|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미국의 시대적인 영화 (0) | 2022.07.14 |
톰보이, 나는 누구인가 생각해 보는 영화 (0) | 2022.07.13 |
미나리,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영화 (0) | 2022.07.12 |
펠레 버스 오브 어 레전드, 축구황제의 이야기 (0) | 2022.07.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