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맨 시리즈의 최신작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입니다. '킹스맨' 단어만 들어도 벌써 신나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핏 좋은 슈트에, 기사도 정신을 강조하는 매력적인 인물들, 최신 장비를 사용하면서도 특유의 아크로바틱 한 몸짓으로 구현된 액션은 많은 관객을 열광시켰고 수많은 패러디와 함께 초대박을 터트린 작품입니다.
시리즈의 근간 다지기
2편에선 여러 가지 구설수에 오르며 시리즈의 위기로 보일 수 있었으나 흥행 면으로 만 본다면 여전히 성공했고 후속작이 나오기엔 전혀 무리가 없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그 후속작이 <킹스맨: 골든 서클>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아닌 킹스맨의 탄생기를 다룬 프리퀄이란 점입니다. 기존에 익숙했던 인물과 상황에서 벗어나는 건 그 나름의 도전이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콜린 퍼스와 태런 에저튼이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컸기에 상대적으로 이번 작품의 라인업은 조금은 약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시리즈의 존속과 장기화를 위해선 근간을 다지는 것도 꼭 필요한 작업입니다. 게다가 많은 관객이 설정 그 자체만으로도 큰 흥미와 궁금증을 가졌기에 더욱더 필요한 과정일 겁니다.
부족한 아이러니
본론으로 돌아가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아쉬운 작품이었습니다. 자신이 가진 매력을 잊어버린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기존의 킹스맨은 불량식품과도 같은 영화입니다. 그간 섹시한 미중년으로 묘사되던 첩보영화의 주인공을 20대의 나이로 끌어내렸고 악당 또한 특유의 무게감이나 품위 따윈 없는 원색의 스냅백을 쓰고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집어먹는 인물입니다. 액션 연출은 폭력성과 자극이 최우선인 것처럼 농도 짙고, 밀도 높습니다. 게다가 영화에서 나오는 농담과 조롱은 윤리적인 금기를 아슬아슬하게 줄 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영화에서 기억하는 가장 중요한 대사 영화의 시작을 알리고, 마무리를 짓는 말은 'Manners Maketh Man'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재미는 아이러니입니다. 고급 슈트를 입고, 고급 레스토랑을 방문해 불량식품을 칼로 써는 재미입니다. 반면 이번 작은 이러한 킹스맨 고유의 매력이 너무나도 부족해 보입니다.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는 품격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영웅적인 인물을 일반적인 우리로 끌어내린 전작과 달리 이번 작의 올랜도 옥스퍼드와 콘래드 옥스퍼드는 지극히 희생적이며 낭만적입니다. 주인을 위해 봉사하고, 때론 주인을 일깨워주는 숄라와 폴리도 마찬가지죠. 액션에서도 비슷한 아쉬움이 보입니다. 이전 작처럼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듯한 자세, 왜 저런 모습으로 공격하고 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더럽지만 멋있게 느껴지는 것들이 라스푸틴과의 대결 신을 빼면 거의 없습니다. 다만 정말 멋있게 싸우는 장면들이 대부분입니다. 신사답고 정당한 펜싱을 연상하는 액션보다 왜 저렇게 회전하면서 공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춤을 연상하는 액션이 더 마음에 드는 영화, 그것이 킹스맨입니다. 장르적 면에서도 전작과 차이를 보입니다.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와 <킹스맨: 골든 서클>이 첩보원들이 펼치는 액션, 어드벤처물이었다면 이번 작은 첩보 자체에 무게가 실려있습니다. 자신의 존재가 들킬 것인가 말 것인가로 서스펜스를 만들고, 대결의 중심엔 칼과 총보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다만 이러다 보니 영화 자체의 박력은 이전보다는 조금 약하다고 느껴집니다. 사실 전작은 말이 은밀한 첩보이지 본 사람 모두를 죽이면 암살이다 식으로 모두 다 죽여버리고 그 과정을 잘 짜인 액션으로 보여줬습니다. 반면 지금은 많은 부분이 혓바닥, 즉 말싸움이고, 몇몇 있는 액션도 첩보원답게 1:1 대결 구도 혹은 소규모 싸움으로 연출합니다. 이 자체에서 오는 매력은 분명 있습니다. 전통 첩보가 줄 수 있는 재미는 분명 있습니다. 다만 전작의 교회 신과 같은 대규모 액션, 리치몬드 발렌타인을 추적하거나 포피 아담스의 기지를 공습하는 모험과 같은 재미를 기대하신다면 실망감이 들 수도 있습니다.
매력 없는 악역
위에서 말한 요소들이 사실 영화의 약점보다는 감독의 선택이었다면 영화의 악역에 있어선 명확한 한계를 보입니다. 전작의 리치몬드 발렌타인, 포피 아담스, 위스키에 비하면 너무나도 매력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일단 절대적인 등장 시간이 너무나도 적습니다. 애초에 영화의 갈등 방향이 주인공과 빌런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 혹은 '아내와의 약속' '자신의 신념'처럼 내적인 요소에 있습니다. 전작의 전개가 직선적이고 표면적이며 시원시원했다면 지금의 킹스맨은 간접적이며 내재적이고 깊이와 감성을 만들려 합니다. 물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답게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갈등의 방향을 외적으로 재조정하지만 초반부 세팅이 그렇다 보니 중심 대결에서 멀어진 악역은 들러리 마냥 조금씩 등장합니다. 그 등장 또한 주인공에게 직접적인 영향보다는 간접적인 영향만 주다 보니 카리스마는 약해지고, 위기감의 형성도 잘 안되었습니다. 사실상 올랜도 옥스퍼드에게 위기를 주는 건 암실에서 바득바득 소리 지르는 악당보다는 전쟁에 참여하겠다고 떼쓰는 콘래드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반전을 주겠다고 조금 나오는 악역의 얼굴마저 가리다 보니 더욱더 존재감은 미비해집니다. 그렇다고 반전이 억 소리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유명 인물들과 사건을 하나의 이야기로 묶는 나름의 노력이 눈에 띕니다. 영화의 미장센이나, 배우의 연기 등 무엇 하나 빠질 건 없지만 무엇 하나 도드라지는 느낌도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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