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이기는 삶을 살아온 료타는 남부럽지 않은 삶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지난 6년간 휴가 한 번 못 낼 만큼 다소 사무적인 남자이기도 하였지만, 나름의 사랑도 알고 있었고 부족함도 없었기에 어쩌면 이상적인 삶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성공한 비즈니스맨이자 행복한 가장인 료타의 반복되는 이 삶에 불현듯 전해져 온 소식. 케이타를 출산한 산부인과에서 지금까지 키워온 케이타가 사실은 친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료타는 이 사실이 믿기지 않았지만 한 편으론 묘한 안도감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사랑스러운 아들 케이타에 대한 의문이 조금은 풀린듯하였습니다. 왜 나를 닮지 않았을까?, 왜 나처럼 우수하지 않을까?, 아내를 닮아 유약한 것인가? 등에 대한 의문이 확신이 되어버린 료타는 새까만 분노를 내뿜습니다. 그들은 병원 변호사의 권유에 따라 아니 그들의 의지에 따라 가족 간의 만남을 주선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꼭 알아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류세이라는 아이, 그의 아버지처럼 빨대를 씹는 저 아이, 저 아이가 내 친자식이라니.. 상황이 어떻든 간에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그는 케이타에게, 류세이에게, 또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체호프의 총
러시아의 극작가 체호프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극에 총이 나오면 쏴야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함인지 작가 스티븐 킹은 이런 말을 더했습니다. "3막에 총을 쏘고 싶다면, 1막에는 총이 나왔어야 한다." 결과엔 반드시 원인이 필요하다는 그런 단순한 말입니다. 작품을 논하기에 좋은 척도가 되어주기도 하는 "체호프의 총"은 이 작품 안에서 우릴 향하여 이야기를 향하여 정확하게 발사되었고 명중하였습니다. 료타가 계란이 먹고 싶다 하는 스쳐가는 장면부터 류세이의 말버릇, 또 케이타에게 보내는 윙크까지, 이 사소함 들은 료타를 아버지로 변화시키는, 또 이야기를 풀어가는 의미 있는 총알이 되었습니다. 료타는 사무적인 인간이었기에 그 누구의 부탁과 조언보다 직장 상사가 내뱉은 둘 다 키우라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따르고자 했습니다. 이 또한 하나의 방아쇠가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좋은 아버지'로 보일 수도 있는 료타를 어리숙한 인간으로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또 이 영화는 시청자들의 불편한 마음을 씻어주기 위해 최고의 명장면을 준비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료타가 둘 다 자신이 키우겠다고 직설적으로 말을 하고, 그 어처구니없는 상황 속에 제대로 분노할 수 없는 부모를, 힘든 삶 속에서 허덕이는 부모의 심정을 이보다 잘 표현할 수 있었을까요? 스티븐 스필버그조차 감탄을 자아낸 이 장면은 또다시 발사되어 료타에게 명중하였습니다. 늘 사이키를 내려다보던 그가 그에게 고개를 숙이고 눈높이를 맞추게 하였습니다. 이외에도 무수히 발사되는 체호프의 총들을 살펴보는 것, 영화의 아주 큰 재미가 될 것입니다.
아리아(Aria) : '그 자체만으로도 완전한 곡'
작품에 쓰인 한 피아노 곡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한 시간 반 정도 분량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아리아'를 시작으로 여러 가지 변주와 함께 듣는 이를 황홀한 세계로 빠뜨려줍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는 곡 중 '아리아'의 선율이 쓰였습니다.
어떻게 사용되었나 보다 어떻게 정지되었는지가 중요합니다. 케이타가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분노에 휩싸여 창문을 치는 이 장면에서 아름다운 선율을 이런 식으로 깨트릴 필요가 있었을지, 스스로 가정의 행복을 깨트릴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이 작품을 관통하는 가장 의미 깊은 장면이 아닌가 싶습니다. 료타의 가정은 너무나도 행복한 모습으로 묘사되었었고 케이타가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조차 그 자체만으로도 완전해 보였습니다. 그 완전함을 깨부순 건 료타 그 자신이었습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완전한 곡을, 아리아를 깨부순 것 역시 료타 자신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이키 가'의 행복한 모습, 그 자체만으로도 완전한 모습 또한 료타의 등장과 함께 침묵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살짝이나마 결말을 유추해 볼 수 있었습니다. 료타가 조금은 아빠다워져서 이제는 그가 곡을 멈추는 역할이 아닌 재생하는 역할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체호프의 총'에 맞아 벌집이 된 료타는 아리아에 어울리는 가장이 되었고 조금은 아빠가 되었습니다.
영화 내의 변주곡
원인가 결과가 명확하기에 직관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나 합니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변주도 들려주기에 다채롭기도 하였습니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인 간호사 집안 이야기도 그 '변주' 중 하나라 생각합니다. 이 간호사는 과거에 아이가 있는 남자와 결혼을 했고 남편의 자식과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어떤 심정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남이 불행하길 바라는 마음에 갓난아기들을 뒤바꾸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양아들이 한 자루의 총이 되었고 그녀는 총에 맞은 아픔에 끔찍한 범행을 저지릅니다. 범행은 한 자루의 총이 되어 두 가정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잘못을 뉘우친 그녀는 두 가정에게 사과의 의미로 돈 봉투를 보내게 되었고 이를 거절하기 위해 그녀의 집에 방문한 료타는 또다시 총에 맞게 됩니다.
우리 엄마 일이니까 나도 상관있다는 말 한마디로 큰 총알 두 방을 료타에게 명중시킨 간호사와 양아들, 원인을 제공한 것도 깨달음을 제공한 것도 이 친구였습니다. 이걸 미워해야 하나 고마워해야 하나 헛웃음이 나올 만큼 재밌는 '변주'가 아니었나 합니다. 우리는 삼자가 되어 두 가정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들이 바라보지 못했던 것을 안타까워하기도, 훈훈해하기도 하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겁니다. 늘 수동적이던 케이타가 의욕을 갖고 재능을 뽐내는 '사진 찍기' 료타가 이를 발견해 줘서 아버지로서 또 한 걸음을 내딛길 바라며 이만 리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늘을 걷는 남자, 꿈을 향해 전진하다. (0) | 2022.06.26 |
---|---|
타인의 삶, 개인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 (0) | 2022.06.25 |
인생은 아름다워, 비극과 희극 사이 (0) | 2022.06.24 |
더 배트맨, 그 어두운 누아르 속으로 (0) | 2022.06.23 |
이터널 선샤인, 기억과 망각 그리고 추억 (0) | 2022.06.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