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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이, 젝시, 현대 사회의 '좋은 아이러니'

하이 젝시

 

현대 사회에서 휴대폰의 중요성

현대 사회에서 휴대폰은 통신수단 그 이상을 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기 위한 알람 시계이자 회사를 찾아가는 지도이며 정보를 찾아보는 컴퓨터입니다. 하지만 휴대폰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결국은 인간에게 사용되는 도구입니다. 능동성을 가질 수 없는 기계일 뿐입니다. <하이, 젝시>는 이 지점을 비튼 영화입니다. 굉장히 뛰어난 지성을 가진 프로그램이 주인공인 필을 컨트롤하려 합니다. 인간을 한심해하기도 하고 조언을 하기도 합니다. 이 상상은 제법 재밌고 귀엽습니다. 영화 <HER>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지만 분명 다른 구석이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상상과 아이디어만으로 만들 순 없습니다. 이 영화는 감독의 재치에 비해 작법적 기술이 부족하여 아쉬운 영화입니다. 존 루카스 감독의 <하이, 젝시>입니다.

 

의미 있는 이야기

주인공 필은 흔히 말해 '집돌이'입니다. 사교성도 부족하고 운동도 잘 못하며 하는 거라곤 집에서 휴대폰 보는 게 전부입니다. 마치 저를 보는 것 같았고,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사람이 어리석어서가 아니고 시간이 갈수록 우리는 편하고 가까운 걸 찾기 때문입니다. 여행도 휴대폰을 통해서 가고 행복도 휴대폰에서 찾으려 합니다. '힐링했다'라는 글을 쓰기 위해서 우리는 예쁜 옷을 입고 카메라를 움직이면서 수십 장의 사진을 찍어냅니다. 그리고 나의 힐링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수까지 확인해야 진정한 힐링을 했다고 느낍니다. 이 영화는 이러한 점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휴대폰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필을 휴대폰 인공지능인 젝시가 비판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젝시는 필이 휴대폰에서 벗어나서 좀 더 사교적이고 자신감을 가지길 바라고 그러한 상황을 만들어갑니다. '휴대폰이 휴대폰에서 벗어난 삶을 살 수 있게 만든다.' 좋은 아이러니였습니다. 현대 시대에 꼭 필요한 이야기로 구닥다리식 권선징악 교훈보다는 훨씬 의미 있습니다.

 

통일되지 못한 주된 갈등

이야기의 의미는 주인공의 목표가 해결되면서 전달됩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의 목표는 '너드 휴대폰 쟁이인 필이 현실 사회로 나간다'와 '미모의 자전거 가게 주인인 케이트와 잘 되길 바란다'입니다. 이 지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입니다. 사실 이 둘 중의 하나만 이야기했어도 충분했습니다. 심지어 84분의 영화입니다. 하나의 이야기를 최적화시켜도 부족한 시간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는 너무 급작스럽습니다. 사건이 발생하면 그 앞뒤의 상황이 있을 건데 그러한 상황이나 감정을 보여줄 여력이 없습니다. 감정이 서서히 쌓여가지 못하고 그저 단편적인 한 지점만 보여줍니다. 끔찍한 폰이라며 버리려고 했다가, 갑자기 최고의 폰이라고 하고 번호를 받은 것이 아니면 전화하지 말라던 케이트가 필의 사과 한 번에 폰 번호를 교환합니다. 그리고 데이트도 하고, 키스도 하고 언제부터 사귀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케이트가 전 남자 친구와 같이 있는 걸 보더니 필은 갑자기 헤어지자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필이 케이트를 찾아가니까 케이트는 진작에 전 남자 친구와의 여행을 거절했다며 그에게 함께 있자고 합니다. 영화가 절벽같이 감정의 기복이 커도 너무 큽니다. 이 말인즉슨, 너무 쉽다는 겁니다. 갈등의 해결이 너무 단순합니다. 싸웠다 해도 사과 한방에 해결됩니다. 관객들은 상황을 이해할 정보가 필요하고 캐릭터의 감정에 이입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이제 해결됐다!' 해서 우리는 '아 그렇구나~'하고 인지하지 않습니다. 그건 휴대폰이나 그런 겁니다.

 

악역에 대한 집착

이야기의 재미는 갈등에서 나옵니다. 갈등을 유발하는 요소가 강할수록 주인공은 힘겨워하고 목표를 성공했을 때 관객들이 느끼는 성취감은 커집니다. 주인공과 갈등을 일으키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 현대 상업영화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이 '적대자'를 만드는 겁니다. 즉, 악역을 만드는 겁니다. 좋은 악역들이 등장한 영화는 좋은 영화가 되었습니다. <위플래쉬>의 플렛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한스 란다 대령,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시거 등, 이들이 만들어내는 위기감과 공포감은 영화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하이, 젝시>는 악역에 대한 집착이 깃든 것 같습니다. 우린 좋은 팀이라 말했던 젝시가 갑자기 한국 막장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행동을 취합니다. "저 여자보다 내가 못한 게 뭐냐"라며, 주인공을 위협합니다. 사생활 정보를 뿌리고 심지어 차를 조정해서 공격합니다. 이제껏 영화는 집돌이인 필이 집에서 나가 사회생활을 하게 되는 것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러면 영화의 갈등을 발생시키는 요소는 자신의 내면적 문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껏 소심한 집돌이었던 이유가 있을 거고 과거의 자신의 모습에 대한 부끄러움과 걱정이 주인공을 막아설 겁니다. 실제로 케이트와 전 약혼자의 모습을 본 필은 과거의 너드 버릇이 나와서 현실에서 도망치고 헤어지자 합니다. 영화는 이런 부분에 살을 붙이고 앞뒤 전개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젝시를 악역 화하면서 장르적인 변주를 두려 했지만 정작 그것은 이질감을 불러일으키고, 해결에 대한 작위성만 생기게 했습니다.

 

웃음의 방향

이 영화는 전형적인 B급 코미디입니다. 코미디의 수위는 제법 높습니다. 누군가에겐 불쾌함을 줄 수도 없고, 누군가에겐 최고의 웃음이 될 수도 있습니다. 15세 관람가이지만 직접적인 성적 묘사가 없다 해도 주인공이 하는 농담이 15세가 하는 농담은 확실히 아닙니다. 이 점 인지하시고 관람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