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에서 예술은 매우 가까이에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축구에서 멋진 골이 들어갔을 때도 우리는 "예술이다."라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예술가가 된다는 건 조금 다른 문제입니다. 예술가는 자기만의 뚜렷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많은 예술가들은 자신의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작가 미상>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고 있는 예술가의 모습을 그린 영화입니다.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 마르크 감독이 8년 만에 다시 찾아왔습니다. <작가 미상>입니다.
예술의 흐름
이 영화는 화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영화입니다. 리히터는 세계 현대미술사에 있어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작가입니다. 이야기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선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예술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술은 자유의 표현이자 파괴적 행위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점은 자신이어야 합니다. 물론 현대 예술은 순수 창작이 아닌 선택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었습니다. 다시 영화의 시점으로 가겠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당시 서구는 파시즘과 제국주의로 물들게 됩니다. 그 순간 예술은 홍보의 수단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림뿐만이 아닙니다. 프로파간다 영화들이 쏟아지는 시기였습니다. 미국 정부도 군을 홍보하기 위해서 프로파간다 영상을 제작했습니다. 심지어 디즈니에서 말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의 것이 아닌 자신의 것을 탐구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자신과의 갈등을 넘어 이데올로기와도 갈등을 했어야 되었다는 겁니다. 이 영화의 주된 갈등이자 가장 큰 흥미 요소입니다.
너무나도 긴 1막
영화의 설정 단계는 고전적인 작법에 비해서도 너무나 깁니다. 하물며 템포가 빠른 현대 영화에 비하면 지겨운 수준입니다. 유년시절 쿠르트의 모습부터 가족관계까지 심지어 형, 누나, 아빠가 어떻게 죽는지 하나하나 다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술가에게 누군가의 죽음은 결정적인 순간이긴 합니다. 여기까지 이해하겠지만 하지만 영화의 설정은 한 명의 인물에서 그치지 않고 칼 시반트의 캐릭터까지 디테일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인공급으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게 설정 단계 그 순간에서는 단점으로 적용이 됩니다. 물론 곧이어 다가올 주인공과의 대치상황에서는 극적인 효과를 만들어줍니다. 감독의 선택이었고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고 생각됩니다. 나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재한 이유가 제공되고, 최고의 산부인과 의사라는 점은 주인공을 막아서는데 혁혁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딸이 임신한 걸 전문가의 시선으로 이미 알아차린 장면은 관객들의 예상 범주를 훨씬 넘었다고 생각됩니다. 심지어 설정을 잘해둬서 작위적이지도 않았습니다. 공들인 값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2막
저는 중간 단계가 아쉬웠습니다. 결국 영화는 쿠르트가 진정한 예술가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예술가가 되는 그 과정은 굉장히 힘들어야 합니다. 동독은 쿠르트에게 "자유진영의 예술은 퇴폐 미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자에겐 너무나도 의미 없고 생산적이지 못한 겁니다. 쿠르트가 배우고 있는 미술은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입니다. 자유와 파괴와는 거리가 먼 선전, 선동에 특화된 예술이고 너무나도 쿠르트에게 맞지 않은 옷입니다. 또한 엘리 시반트와 사랑에 빠지며 그녀의 집에서 세 들어 사는데 그녀의 아빠는 나치 출신의 의사입니다. 의사는 최고의 난이도를 가진 기술직으로 물건이나 기계를 다루는 게 아니라 사람을 다룹니다. 직업에 귀천은 없지만 난이도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의사인 칼 시반트의 눈엔 예술가인 쿠르트가 아니꼽게 보이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내외적으로 쿠르트를 힘들게 하고 영화적 갈등은 고조됩니다. 심지어 자신의 딸인 쿠르트의 아내를 낙태시킵니다. 나치즘에 빠진 시절의 우생학적 사고를 그대고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이 영화는 훌륭했습니다. 갈등과 해결의 완급 조절은 능숙했고 발생한 갈등도 점층적으로 커집니다. 하지만 동독을 탈출한 뒤부턴 이야기가 엉성해집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칼 시반트의 존재가 갑자기 사라져 버립니다. 주인공에게 제동을 거는 가장 큰 인물이 제대로 된 역할을 못합니다. 발생시키는 갈등의 크기도 이전만은 못합니다. 사실 예술이란 게 예술가의 내면적 문제라서 혼자만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갈등을 유발할 적대자나 장애물이 등장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설정 단계에서 '칼 시반트의 캐릭터 설명을 이렇게까지 길게 할 필요가 있었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심지어 칼 시반트의 영화적 퇴장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성장이 끝난 쿠르트의 그림을 보고 부들부들거리다 자리를 떠납니다. 쿠르트의 말처럼 자신은 정치를 하는 사람도, 사진을 찍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저 그림을 그리는 사람입니다. 쿠르트가 영화적 심판을 할 필요는 없지만 칼 시반트는 환자를 죽인 의사입니다. 과도할 정도로 엘리트주의를 가졌고, 개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우생학적 사고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 스스로 어떠한 성장을 거치거나 뉘우침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과잉 감정을 유발하라는 게 아닙니다. 초반에 긴 설정을 준 만큼 조금의 명확성이 있었다면 더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되었습니다. 해결 단계의 카타르시스가 충분하지 못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성장의 아이러니와 엔딩
굉장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이 영화가 가진 예술적 아이러니는 흥미로웠습니다. 자신이 꿈꾸던 서독의 자유 예술은 쿠르트의 눈엔 괴상한 모습으로 비칩니다. 그는 자유 예술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흉내 내기만 바쁩니다. 그 이후 쿠르트는 많은 갈등을 겪으면서 성장합니다. 페르텐 교수에게 진정한 예술의 가치에 대해 배우고 예술적 감각을 일깨워준 이모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게 됩니다. "진실한 것은 모두 아름답다" 그렇게 쿠르트는 진실을 쫓는 화가가 됩니다. 사진 회화의 탄생입니다. 결국 돌아간 곳은 회화였습니다. 회화는 서독에선 이미 쇠퇴한 예술이자, 동독에선 선전의 수단으로 쓰였던 기술입니다. 쿠르트는 자신의 회화를 파괴하고 재조립하여 완전한 자유를 찾습니다. 예술가로서의 진정한 성장을 이루고 영화 캐릭터로서의 완성도 성공입니다. 이 영화는 긴 영화입니다. 어쩌면 도너스 마르크 감독은 할리우드식 상업영화에 맞지 않는 감독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실제로 할리우드에서 메가폰을 잡았던 <투어리스트>는 제대로 망했습니다. <타인의 삶> 때로 회귀한 작품입니다. 못하는 걸 내려두고 잘하는 걸 살리려 했습니다. 하지만 <타인의 삶>만큼 완성도가 있는 작품은 아닙니다. 서사의 밀도 면에선 확실히 많이 떨어집니다. 타인의 삶을 인생 영화로 꼽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고 자극적인 영화의 지친 분들도 많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분들은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볍게 영화를 즐기는 관객에겐 3시간이란 시간은 부담스러운 시간이라 생각됩니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이, 젝시, 현대 사회의 '좋은 아이러니' (0) | 2022.07.16 |
---|---|
젠틀맨, 원조 맛집 가이 리치의 컴백 (0) | 2022.07.16 |
건즈 아킴보, 불량식품 같은 B급 영화 (0) | 2022.07.15 |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미국의 시대적인 영화 (0) | 2022.07.14 |
에어로너츠, 특별한 소재의 흥미로운 이야기 (0) | 2022.07.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