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은 애니메이션 명가 픽사 스튜디오의 22번째 작품입니다. 디즈니와 픽사라는 거대한 후광 그리고 크리스 프랫, 톰 홀랜드라는 화려한 스타진, 최고의 장인과 최고의 재료가 만난 이 영화는 누가 봐도 픽사의 건재함을 확인시킬 것만 같습니다. 제 개인적으론 픽사의 영화들은 굉장히 새로운 것을 가장 보수적인 방법으로 담는 제작사라 생각합니다. 소재와 주제는 사회의 통념을 무너뜨리고 있지만 그것을 이야기화할 땐 명확한 이야기의 구조와 확실한 규칙이 존재합니다. 신선하면서도 안정적인 영화, 필승의 레시피처럼 보이는 이 방법은 새로움이 부족하다면 기시감 덩어리인 데이터 조각으로 변질될지도 모릅니다.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입니다.
온워드의 설정
온워드의 설정은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엘프, 켄타우로스, 요정과 같은 신화적인 생물들이 살고 있지만 그 생물들이 살고 있는 공간은 현대의 도시와 굉장히 닮아있는 곳입니다. 마법과 판타지가 즐비한 과거와 달리 현재는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로 인해 마법은 점점 쇠퇴해 모두에게 잊힌 상황입니다. 영화는 주인공 이안의 등장과 함께 정보들을 쏟아냅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아버지를 여읜 주인공, 아버지의 옷을 입으며 이안이 얼마나 그를 그리워하는지 잘 묘사합니다. 형인 발리는 요즘 말로 오타쿠입니다. 그것도 '옛 것' 오타쿠입니다. 오래된 분리수거장의 철거를 막으려 하고 역사를 담은 보드게임을 신성시하며, 조금 우스꽝스럽지만 자신을 전사라 생각하고 동생에게 기사 수여식을 하려고 합니다. 캐릭터의 묘사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이 캐릭터가 무엇이 부족하고 내적으론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지 명확하게 전달하려 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성장을 위한 거대한 포석과 같은 장면들입니다. 채우기 위해선 빈 곳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이 조금은 산만하고 시끄럽다는 점은 아쉬움입니다. 하지만 무엇이 중요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어린 친구들을 타깃으로 한 애니메이션에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성장성입니다.
명불허전의 픽사
이안의 열여섯 번째 생일, 엄마인 로렐은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버지였던 윌든이 남긴 선물을 주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진행됩니다. 그 선물은 아버지를 하루 동안만 부활시킬 수 있는 마법의 도구 지팡이와 보석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부활 도중 픽사의 기지가 번뜩입니다. 그것은 이안의 불완전한 주문과 발리의 방해로 인해 윌든의 몸 절반, 즉 하체만 부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활의 핵심 도구인 보석은 한 번의 주문으로 인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반을 부활시키기 위해선 또 다른 보석이 필요합니다. 이야기를 움직이기 위한 주인공의 동기는 확실하게 설정되었습니다. 주인공을 압박하기 위한 타임 프레임도 명확하게 존재합니다. 재미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 바로 픽사의 방식입니다. 모험의 과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씨를 뿌리고 씨를 거두는 것이었습니다. 허튼 대사, 허튼 상황이 거의 없었고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뿌려둔 떡밥을 회수합니다. 왜 분리수거장 철거를 막았는지 왜 가시가 있는 지팡이를 다듬지 않았는지 정보들이 회수될 때의 쾌감이 좋습니다. 물론 몇 가지의 정보들은 뿌려둔 지점과 거두는 지점의 간격이 좁아서 충분한 효과를 주지 못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땐 높은 타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픽사 특유의 개그코드도 저에겐 좋았습니다. 박장대소는 아니지만 편안한 웃음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개그의 과정에서 왜 하체만 부활했는지 확실히 알려줍니다. 사전에 상상하기 힘든 지점이 몇 군데 있고 순간적인 재치가 느껴졌습니다.
명작이 되기에는 살짝 부족한 영화
이 영화는 괜찮은 영화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간 픽사가 만들어 온 명작들의 반열에 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로 느낀 건 이 영화가 하고 있는 메시지는 성인에게도 먹히는 이야기지만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은 어린 친구들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사실 단점이라고 말할 순 없습니다. 타깃층이 명확한 건 모든 영화가 당연합니다. 그리고 요즘이야 성인 애니메이션이 많지만 고전적으로 애니메이션이 어린 친구들을 타깃으로 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갈등의 발생과 그 해결이 지나치게 단순화된 건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갈등을 지속시켜 위기감이나 서스펜스를 줄 생각이 없습니다. 어렵고 복잡한 것보다 쉽고 다양한 걸 선택합니다. 하지만 그 선택이 위험을 넘을 때마다 관객들이 얻게 될 성취감을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너무 쉽다 보니 뻔해지고 뻔하다 보니 어느 순간 감정이 무뎌졌습니다. 두 번째는 앞서 세팅한 영화의 설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합니다. 마법이 사라지고 과학이 발달한 판타지 세계 이 지점이 신선했는데 영화의 중반부턴 보통의 판타지 영화와 유사합니다. 여행 도중에 마법을 습득해가고 못할 것 같은 대마법도 성공하고 위기가 올 때마다 마법 퍼레이드로 다 해결합니다. 사실 경찰차가 쫓아온다는 점이 현대사회의 모습인데 존재가 경찰차일 뿐 뭐 가고일이나 고블린이 쫓아오는 거랑 큰 차이가 없습니다. 여기저기서 참신함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감동적이고 강력한 엔딩
그럼에도 이 영화가 픽사의 애니메이션이라고 느끼는 점은 바로 엔딩에 있습니다. 따뜻한 감동이 있습니다. 옛 것에 대한 존경과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그 그리움을 통해 현재의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일깨워주게 됩니다. 주인공이 결국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고 돌담 너머로 지켜본다는 연출은 정말 좋았습니다.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잔인하게 보이지만 과거는 돌아가야 하는 곳이 아닌 추억해야 할 곳입니다. 어쩌면 아버지와 포옹한 형이 이안과 포옹함으로써 그 과거는 현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가 끝날 때쯤 모든 캐릭터가 성장하게 됩니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만티코어, 브롱코도 마찬가지입니다. 캐릭터 하나하나에 애정이 있음이 느껴졌습니다. 엔딩이 너무 친절한 감도 있지만 뭐 나쁠 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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